-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다른 존재를 살피지 못하고,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생활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근시안적 삶’의 방식이다. 반대로 눈 앞의 현실은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말만 너무 앞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만 얘기할 뿐 현실을 변혁하는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삶의 방식도 있다.
‘정시안(正視眼)적 삶’이란 커다란 이상을 품고 ‘무엇을 위해’라는 명확한 목적관에 따라 일상의
현실 속에서
행동을 일으키는 삶의 방식이다.
-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면서, 타인으로부터 신뢰도 얻지 못하는 그러한 삶은 들판에 홀로 서있는 한 그루 나무와 같다. 고립되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기에, 커다란 폭풍이 몰아치면 쓰러지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불안정한 삶의 방식일 것이다.
-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리고 있으면 곤란한 사람이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돈이나 물건을 주고받는 데에 초점을 둔 관계는 가장 저속한 우정이다.
일자리를 알선해주거나 함께 즐거움을 만끽하는 관계는 중간 정도의 우정이다.
최고의 우정은 벗이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충고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관계다.
-
양(羊) 천 마리는 사자 한 마리를 꺾을 수 없다.
소선(小善)을 행하는 천 명의 겁쟁이보다 '대선(大善)’을 위해 투쟁하는 용기 있는 한 사람만 있으면 대사(大事)를 이룰 수 있다.
숫자가 다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품격이다.
- 선(善)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결과는 악(惡)을 행한 것과 마찬가지다.
-
아이가 자다가 이불을 걷어차는데, 이불을 다시 덮어주지 않는 것은 선(善)을 행하지 않음과 같다.
아이가 오한을 느끼고 감기에 걸린다면, 그 결과는 아이가 덮고 자던 이불을 일부러 벗겨낸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결국 선(善)을 행하지 않으면 악(惡)을 행한 것과 마찬가지다.
-
마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지식을 억지로 주입하고 암기시켜서는 안 된다.
교과목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공부에 대한 열정을 끌어내야 한다.
-
교사는 자신이 마치 훌륭한 모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처럼 되라’라는 오만한 태도로 학생들을 지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선생님보다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아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교사는 겸손한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높은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아이들을 격려해야 한다.
-
우려와 평가는 다르다. 그 예로, [유명한 사무라이 이야기처럼] 시든 억새풀을 보고 귀신이라고 착각해 겁을 먹는다.
사람 혹은 사물을 절대로 감정이나 추측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소문과 평판을 토대로 평가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배우자나 가까운 친구의 말이라 해도 잘못된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행복'일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목적 또한 인생의 목적과 일치해야 한다.
-
교육은 개인을 ‘사회화’하는 과정이며, 여기서 "사회"는 인간정신의 세계를 포괄하고 포용하는 일종의 유기체와 같다.
모든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이 사회라고 하는 조직에 연결되어 있고, 개인과 조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회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개인의 행복도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행복을 등한시한다면, 사회의 번영 또한 있을 수 없다.
-
교육의 목적은 지식 전달이 아니다. 학습방법을 지도하고 연구방법을 터득시켜야 한다.
단편적인 지식을 가르치거나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지식을 얻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야 하고,
지식의 보고(寶庫)를 여는 열쇠를 주어야 한다.
고생하지 않고 남이 발견한 지적재산(知的財産)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이나 발명의 과정을 걷게 해야 한다.
-
사물을 충분히 알아보기도 전에 판단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옷이 더럽혀진 아이를 보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화를 먼저 내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먼저 정확하게 실상을 이해한 후에 평가해야 한다.
-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은 어서(御書)에서 ‘어리석은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은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불법을 믿는 사람이 사물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판단할 때, 그 판단기준은 불법에서 가르치는 엄격한 인과이법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
타인의 칭찬이나 비판에 흔들린다면 대선(大善)의 사람이 될 수 없다.
-
인생의 문제는 대화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강연이나 연설을 듣는 사람들은, 그 내용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니치렌 대성인의 어서 ‘입정안국론’ 또한 대화 형태로 쓰여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