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구치 선생님은 거의 500일 동안 감금되었다. 일본의 군사적 상황은 점점 더 절박해졌다.
도쿄와 다른 주요 도시에 연합군의 폭격은 매일 이어졌고, 민간인을 위한 식량배급 또한
부족해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국내 정권을 비판한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의 식량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며느리 사다코와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1944년 10월 13일로
기록되어있다.
네가 10월 5일에 보낸 요조의 전사소식이 담긴 편지를 10월 11일에 받았다. 다정하게 챙겨준 외투와 상의, 양말과 어깨띠도 잘 받았다.
요조의 소식은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구나. 하지만 그 무엇보다 두 사람이 걱정인데, 모두 강건한 의지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사다코, 그간 너는 참으로 강인하게 견디면서 힘이 되어주었다. 정말로 든든하단다. 네가 나에게 보여준 애정과 효심은 내 친자식 이상으로 깊고 지극하다. 현명하게 요코를 키우고, 딸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 부부를 보살펴 준 너의 존재가 노년의 우리 부부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는구나. [요조와 나의] 편지는 마키구치 가문의 영원한 기념물로 보관해야 한다. 나를 위해 그렇게 해다오. [요조와] 진심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소식을 알리도록 하거라. 홋카이도에 계신 고모님도 잊지 말거라. 나는 이번 일이 신심의 도상에서 일어나는 장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가 분명해질 거다. 지금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심이다. 요조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영예롭게 죽었다고 생각하고 요조의 명복을 기원하는 일이다.
칸트의 철학을 정독하고 있단다. 지난 100년간 그리고 그 후의 학자들이 시도했지만 손을 대지 못한 ‘가치론’을 내가 저술하고, 게다가 위로는 법화경의 신앙에 결부시켰고 밑으로는 수천 명이 실증을 낸 것을 보고 나 자신도 놀랐다. 그렇기 때문에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며 이것은 경문대로다. 1
한 달 남짓 뒤 1944년 11월 18일,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은 노령과 영양실조로 옥사했다.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평생에 걸친 활동의 동기가 되고 영향을 주었던 가치, 바로 ‘평화와 인류의 행복’이라는 가치를 위해 순교했다.
- 1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10권 (일본어판), 제삼문명사 300쪽~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