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마키구치 선생님의 창가교육학체계 제1권 출간과 동시에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은 창가교육학회를 창립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입장이 확고해짐에 따라 창가교육학회의 성격 또한 확고해졌다. 창가교육학회 창립 초기에는 구성원 대부분이 마키구치 선생님의 창가교육 이론을 실천하고자 했던 교육자들이었다. 1935년에 이르러 마키구치 선생님은 자신의 교육 이론과 불교의 관계를 다른 각도에서 인식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니치렌 불법 실천이야말로 지금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간단히 말해, 법화경의 정수(精髓)이자 핵심이 창가교육학 지적 체계의 토대라고 단언할 수 있게 되어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 이제는 ‘이러한 방법과 원칙에 입각하지 않고서는 교육적 관행의 참된 향상은 불가능하다’라고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 법화경에 대한 나의 확신과 이해가 깊어지면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사상의 점진적 발전’과 법화경이 일치한다는 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놀랐다. 나의 신앙심과 이해도가 점차 깊어짐에 따라, 나는 법화경의 본질이 일상생활 전반을 다스리는 근본 원리인 반면, 내가 창가교육학에서 제안한 합리적 교육방법은 부분적이고 주변적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1935]1
‘가치’에 대한 마키구치 선생님의 관점도 더욱 무르익게 된다. 불도수행은 어떠한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은 불법(佛法) 혹은 불교의 진리(Dharma)를 절대적 가치의 원천으로 생각하게 된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니치렌 불법 실천에 뿌리를 둔 절대적 가치창조의 삶을 대선(大善) 생활이라고 명명했다. 1942년 초부터 시작된 창가교육학회의 모임은 '대선생활실험증명 좌담회’로 알려졌는데, 여러 사람들의 체험에 견주어 불법 실천의 효과를 시험하고 확인 검증하는 일종의 일상생활 실험실과도 같았다.
시즈오카에서 (1938년 7월)
마키구치 선생님은 일련정종(日蓮正宗)이 계승한 니치렌 불법의 이해는 올바르고 ‘정통'이라고 생각했지만, 종문 승려들이 그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마키구치 선생님은 '신자(信者)'와 '행자(行者)'를 구별, 현실 속에서 직접 행동하며 변화를 일으키는 적극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마키구치 선생님은 적극적 포교활동을 강조했는데, 승려들은 이를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승려 대부분은 재가 신도들의 장례식을 대행하며, 그 대가로 기부금을 받았다. 따라서 승려들에게 재가 신도는 생계유지에 필요한 존재일 뿐이었다. (수백 년 동안, 경전 낭송은 불교 승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이는 마키구치 선생님이 지향한 전체적 관점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선생님은 불법 실천을 통해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불법을 알리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이기적 행동이라고 간주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생애 마지막 무렵 “자신만을 생각하는 부처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 1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8권 (일본어판), 제삼문명사 410~4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