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구치 선생님은 불법에서 설하는 법리 또는 진리가 사회과학, 물리과학의 법칙에 어긋나거나 대체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불법에서 가르치는 인과이법(因果理法)은 다른 영역에서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포함하고 확장하는 법리, 다시 말해 보다 광범위하고 영속적인 질서라고 간주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이성적, 인도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윤리와 도덕에서 다루는 인과법칙은 이번 생에만 국한된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세계의 인과법칙은 각 학문 분야의 현상에만 국한된다. 종합적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철학마저도 이번 생에 국한된 인생관과 세계관을 제시할 뿐이다. 반면, 불법은 세속적 차원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초세속적(supra-secular) 차원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변화와 변혁의 과정을 다스리는 인과법칙을 명확히 설명한다. [1931]1
마키구치 선생님은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 법칙을 평생 일관되게 추구했다. 그런 한결같은 자세는 ‘지리학’, ‘교육’ 그리고 ‘종교’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부분적으로는 정치 또는 사회적 권위를 휘두르며 제멋대로 명령을 일삼는 권력자들로부터 해방되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열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선생님은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의 흐름이 소수의 권위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원칙으로 향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선생님은 열반경에 설해져 있는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법에 의하되 사람에 의하지 말라)’ 문구를 인용하며, 이 가르침은 “20세기 문명국가들이 채택한 입헌정체(立憲政體)의 본의(本義)에도, 과학적 세계관에도 통한다”라고 논했다. 또한 헌법체제에서는 군주조차도 국법을 따르고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이 글을 쓴 1931년 당시에는 ‘일본 천황은 국가의 기능적 기관으로, 국가 주권을 구현하고 대표하지만 실질적으로 정치결정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헌법 해석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우위를 점하게 된다. 군국주의 세력에게 ‘입헌군주제’라는 개념은 혐오감을 유발했다. 그들은 천황의 지위를 신(神)의 위치로 끌어올려, 천황을 어떠한 통제나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살아있는 신으로 만들고자 했다. 헌법에도 군대는 천황에게 직접 보고한다고 규정했기에 천황의 권위 향상은 정치력 증대 및 군국세력 통제권 확대를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은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이러한 관점은, 일본이 군국주의 파시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서 점점 힘을 잃게 된다.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여러 조치가 더욱 엄격해지고, 결국
마키구치 선생님 자신도 "사상범"으로 기소되어 일본 특별고등경찰의 감시를 받게된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늘 인간관계 및 사회 참여에 깊이 고심했다. 따라서 니치렌 불법에 귀의한
뒤, 본인의 신앙적 체험에 고무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불법의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그의 젊은 제자 도다 조가이(조세이)였다. 도다는 존경하는 스승의 권유로
니치렌 불법을 정식으로 받아들인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니치렌 불법을
신앙하도록 격려했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은 일관되게 한 사람 또 한 사람과 대화를 이어갔다.
또한 개인과 사회 전체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에 관해 논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불법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 1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5권 (일본어판), 제삼문명사 3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