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지리학
비록 내가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하는 물리적 환경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세심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주변환경을 관찰하면, 배우고 탐구해야 할 무한한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광대한 우주의 모습과
상태는 가장 작은 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따라서, 조그맣고 외딴 마을에서 발견하는 예를 통해, 거대하고 복잡한 전 세계 국가의 지리 또한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지역
공동체의 지리, 한 동네 혹은 마을의 현상을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모든 국가의 지리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리학에서 적합한 연구순서는 먼저 세심하고 철저하게 지역사회를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적 지리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끌어내고 정리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 과정을 피상적이라거나, 지리학에서 너무 흔한 기초과정이라고 가볍게 보아서도
경시해서도
안 된다. [1903]
지역사회를 둘러싼 관찰을 시작, 사방을 둘러보니 다양하고 놀라운 형태와 모양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관심과 몰입을 요한다. 하지만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몰라 망연자실하게 된다. 다행히도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선인(先人)들이 수립한 규율이 우리를 이끈다. 이 규율을 따른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관찰을 위한 적합한 순서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까운 것에서 먼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총론에서 각론으로” “원인에서 결과로”
혹은
반대로 “결과에서 원인으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개별요소에서 전부로” [1903]
예를 들면, 이 ‘세계 경제시장’ 안에서 대일본제국은 북위 21°~ 51°, 동경 120°~156°에 위치, 태평양이라는 대로의 길고 좁으며 고르지 못한 울퉁불퉁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황폐한 작은 가게와도 같다. 일본 사람들은 태연하게 가게 앞에 앉아, 불을 쬐고 담배를 피우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4천만명의 점원이 있는 일본은 비단 또는 차 건물류(乾物類)를 파는
가게로, 입구에는 벚꽃 표시가 있다. [1903]
앞서 논한 두 개의 장을 살펴보니, 섬나라와 해양국가간의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과 가능성을 느낀다. 위에 묘사한 여러 자극에 의해, 인류는 거침없이 바다로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그 진가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가장 멀고 낯선 곳조차도 확고하게 마음만 먹는다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먼 땅을 향해 나아가는 도상에서, 인간의 책략에 의한 복잡한 방해작용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자유를 만끽하고 음미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과연 누가
소극적으로 주저하고 있겠는가? 누가 육지에만 갇혀 지내는 위축된 삶을 살고자 하겠는가? [1903]
물론 ‘인도적 경쟁’을 위한 간단한 공식은 없다. 무릇, 정치적 활동 혹은 군사 경제적 활동이든 모든 부분에서 인도주의적 원칙에 입각해 실행되어야 한다. 이기적 동기는 제쳐두고,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 또한 지키고, 타인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이 결국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의식적으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자세를 말한다.
[1903]
창가교육학체계
교직생활에 임하며, 매일 매일 책임을 완수하고자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떠오른 여러 가지 생각을 그때마다 기록했는데, 이는 단지 그 기록의 축적 일뿐이다. 인색한 구두쇠가 한푼 한푼 아끼고
모으듯, 나 또한 떠오른 생각이 혹시나 사라지지 않을까, 다른 일과를 하다 생각의 조각을 놓칠까 두려워 붙잡아 매듯 써 내려왔다.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도 어언 30년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종이 조각 또한 산처럼 쌓이고 쌓였다. 메모한 내용을 살펴보니, 그 중에는 그다지 흥미를 끌만한 내용이 아닌 것도 있으나,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기록도 꽤 있었다. 조금만 정리를 하면
어딘 가에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차마 고물상에 넘기지 못하고 지금까지 간직해왔다. 때로는 생쥐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가족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1930]
입학난 “입시지옥” 취업난 등으로 천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학생들이 아수라장과 같은 상황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현대의 문제를 다음 세대에 절대로 물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그 문제에만
몰두하여 훼예포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1930)
지금,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하늘 위의 별을 응시한 채 나아가는 모호한 입장을 버리고, 지금 여러분이 밟고 있는 땅에 주목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교육환경에서
마주하는 경험을 깊이 고찰하며, 성공과 실패를 확인하고 분석하면, 참으로 소중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으로 덮인 연구실에서 연구에만 몰두하는 학자들의 이론에 의미 없이 의존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십시오. 여러분의 소중한 경험을 모으고 합하여, 명백한 원칙을 정립해가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로서 매일의 책무를 해나갈 때 이 원칙을 시험하고 입증해보세요. 그리하여 참된 가치를
지닌 법칙과 원칙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오늘날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중대한 사명입니다. 여러분의 노력이 미래의 성장과 교육의 발전을 보장합니다.
[1930]
사회가 추구하는 목적은 개인의 성장을 위한 개인의 목적과 부합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이 결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며, 반대로 개인의 목적을 위해 사회가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사회의 존속을 위해, 특정 목적을 성취해야 한다면, 이는 당연히 개인의 입장에서도 수용되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개인의 존속에 필요한 목적 또한 사회적 수용이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국민이 존재하기에 국가가 존재하며, 개인이 존재하기에 사회도 존재한다.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국가사회의 성장과 번영을 가져온다. 반대로, 개인의 쇠락은 국가의 쇠퇴로 이어져, 국가는
활력과 영향력을 잃고 만다. 국가사회는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의 연대를 통해 번영을 이룩하고, 구성원들 간의 분단에 의해 쇠퇴하며, 구성원의 해체는 곧 국가의 파멸을 의미한다. [1930]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추구하는 문화생활이 바로 교육이다. “행복” 이외에 그 어떤 말도 완전하고 정확하게 ‘교육의 목적’을 표현하지 못한다. 지난 수십 년간의 나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깊은 고찰을 통해, 나는 ‘행복’이라는 말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간략하고 적절하게 모든 사람들이 바라고 추구하는 ‘인생의 목적’을 표현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1930]
그러나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이성적 인도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윤리와 도덕에서 다루는 인과법칙은 이번 생에만 국한된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세계의 인과법칙은 각 학문 분야의
현상에만 국한된다. 종합적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철학마저도 이번 생에 국한된 인생관과 세계관을 제시할 뿐이다. 반면, 불법은 세속적 차원 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초세속적(supra-secular) 차원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변화와 변혁의 과정을 다스리는 인과법칙을 명확히 설명한다. [1931]
인생의 모든 사업 중에서, 교육이야말로 기술적인 차원에서도, 예술적인 차원에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최상의 재능과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교육의 목적은 바로 인생 그 자체이고,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무상(無上)의 보물이다. [1934]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학습과정을 이끌어주고, 학습자 스스로가 배우고 연구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단편적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방법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창고의 문을 열수 있도록 열쇠를 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이 발견한 지식의 보물을 활용하라고 가르치지 말고, 학생 스스로가 발견과 발명의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1934]
창가교육학체계 개요
『창가교육학체계』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어 제1권 출판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법화경』을 연구하게 되었고, 종교에 대한 나의 태도는 크게 변모하였다. 나는 선불교를 신봉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법화종의 한 종파를 수행하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신앙심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어릴 적 학업에 몰두하던 시절,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기독교) 믿음을 가질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도쿄로 상경한 후, 유교적 미덕만으로는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다시 참선을 하고,
기독교의 가르침을 듣고, 심호흡법을 배우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이후 약간의 믿음을 갖게 되지만, 그 어느 종교에도 깊이 빠져들지는 않았다 ...... 그 어떤 가르침에서도 나의
과학관과 철학관을 뒤집거나, 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을 느낄 수 없었다. [1935]1
그러나 법화경을 접했을 때, 법화경이 일상생활의 기반이 되는 과학적 철학적 원리와 전혀 모순되지 않고, 내가 지금까지 연구해 온 모든 종교적 도덕적 실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매우 놀랐다. 이러한 깨달음 앞에서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나의 일상생활에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법화경의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주 굉장한 결심을 하고 더욱 신앙에 힘쓰니, ‘하늘이 맑아지면 땅은 밝아지고, 법화(法華)를 아는 자는 세법(世法)을 깨닫느니라.’라는 니치렌 대성인 말씀의 진리를 내 현실생활에서
확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환희에 감싸여, 거의 60년이나 되는 내 생활방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어둠을 더듬으며 나의 길을 찾아 헤매던 불안감은 완전 사라지고, 늘 생각에
잠겨있던 오랜 성향 또한 사라졌다. 내 인생의 목적 의식과 야망은 한계를 벗어나 더욱 확대되었고, 나는 드디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최대한 인간적 방향으로
국가교육개혁을 이루고 싶다’는 담대하고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1935]
간단히 말해, 법화경의 정수(精髓)이자 핵심이 창가교육학 지적 체계의 토대라고 단언할 수 있게 되어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 이제는 ‘이러한 방법과 원칙에 입각하지 않고서는 교육적 관행의 참된
향상은 불가능하다’라고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 법화경에 대한 나의 확신과 이해가 깊어지면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사상의 점진적
발전’과 법화경이 일치한다는 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놀랐다. 나의 신앙심과 이해도가 점차 깊어짐에 따라, 나는 법화경의 본질이 일상생활 전반을 다스리는 근본 원리인 반면, 내가
창가교육학에서 제안한 합리적 교육방법은 부분적이고 주변적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1935]
심문기록
개인적으로 나는 정식 성직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내가 출가하여 절에 귀속된다면, 나는 일련정종의 방침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요. 사찰에서 나의 가치론을 알려나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신도로 남아, 일련정종의 신앙원리에 나의 가치론을 도입함으로써 나의 참된 목적이 달성된다고 믿습니다. 창가교육학회의 독특한 특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43]
3000년 전,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하고 가르쳤지만, 법화경에서 이야기하는 불법은 석가모니가 창시한 것이 아닙니다. 그 ‘법’은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이, 우주만물 (제행諸行)의
끊임없는 흐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다스리고 관통하는 법입니다. 불법이라도 해도, 결국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 법과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1943]
이 뜻은 설사 황제 폐하와 같은 군주가 법화경을 믿고 실천한다 할지라도, 만일 이 땅에서 이 법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둔다면, 결국 내란 혁명 기근 역병과 같은 여러 재앙이 일어나 국가는 파멸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역사에 비추어볼 때, 지금 일본이 이러한 상황에 가까운 국가적 재난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중국과의 분쟁 및 태평양 전쟁 역시 일본이 불법을 비방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1943]
질문: 만약 천황폐하께서 니치렌의 법화경 신앙과 어본존을 받아들인다면, 폐하가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국가를 통치할 때 폐하의 자유의지를 방해하지는 않겠는가?
답: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창가교육학회의 좌담회와 회원들과 나눈 개인대화를 통해 나는 천황애 관해 종종 ‘천황도 범부다. 왕세자 시절, 천황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배우려고 가쿠슈인에 다닌
평범한 한 인간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천황도 다른 사람들처럼 실수를 합니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야마오카 텟슈는 여러 차례 메이지 천황에게 경고하고, 천황의 실수를 지적했다고 합니다. 나는 야마오카의 행동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만약 천황이 어본불을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럽게 지혜를 이끌어내고 발휘하여, 실수 없이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1943]
폐하가 병에 걸렸을 경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의사의 조언을 자애롭게 받아들여야 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 생활 방식을 채택해야만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황폐하는 인과이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만일, 폐하가 이 위대한 근본법을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이 나라는 반드시 부흥하고 평화와 안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943]
기타
기관지 가치창조
아무리 유서 깊은 전통일지라도, 실질적 증거로 입증할 수 없는 근원 불확실한 사상을 결코 따라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상 때문에 자신과 타인은 물론 공동체 전체의 소중한 생명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신사참배 강요는 매우 시급한 문제로 반드시 다시 검토해야 한다. [1941]
창가교육학회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
마키구치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의 전반적 사상과 신념은 저항적이고 폭동을 선동한다. 경찰본부와 후쿠오카 특수경찰의 감시보고서에 의하면, 마키구치는 회원들에게 ‘천황도 범부이다.’ ‘천황
자신이 국민들에게 충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천황에 대한 충성강요는 교육칙서에서 삭제해야 한다.’ ‘법화경과 니치렌을 비방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세신궁에 가서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가르치며 폭동을 선동해왔다.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