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렌 대성인이 설한 불법이 절대적 ‘선(善)’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게 된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후 ‘국가신도’라고 불리게 될 교리에 점점 더 비판적이 된다. 국가신도는 고대신화와
천황숭배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교리로, 19세기 후반 일본 국민의 통일된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요컨대, 일본 천황은 그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천황을 낳았다고 하는
태양신의 혈통후손이라고 선언했다. 일본은 국가신도에 대한 믿음을 적극 강요하고,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을 경우 폭력적 탄압을 가했다.
1920년대 후반부터 경찰은 유물론적 경제관점에서 천황제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 및
좌익사상체계를 탄압했다. 1930년대 초에는 천황을 ‘제한된 헌법적 역할 수행자’라고 생각한
자유주의자들을 압박하고 탄압했다. 마침내 1930년대 중반부터 ‘천황신성’이라는 공식교리에
대한 대안의 여지가 될 종교단체 탄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41년경부터 특별고등경찰
다시 말해 사상경찰은 마키구치 선생님의 뒤를 따라다니며 국가신도 관행에 관한 주제가 나올 때마다 말을 저지했다. 이는 비판적 사고를 잠재우기
위한 직접적인 협박이었다.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한 지 불과 2주 뒤인 1941년 12월 20일자 창가교육학회 공식 간행물
‘가치창조’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은 국가신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면 비판했다.
아무리 유서 깊은 전통일지라도 실질적 증거로 입증할 수 없는 불확실한 사상을 결코 따라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상 때문에 자신과 타인은 물론 공동체 전체의 소중한 생명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신사참배 강요는 매우 시급한 문제로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 [1941]1
5개월 뒤인 1942년 5월, 권력당국은 기관지 ‘가치창조’를 폐간시켰다. 점점 더 거세지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마키구치 선생님은 일본 전역을 돌며 창가교육학회 좌담회에 참석, ‘모든 사람들의 생명에 내재한 무한한 가능성을 존중’하는 니치렌 불법과 법화경의 가르침을 전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불법을 비방하는 방법(謗法)은 죄업이므로 과보(果報)를 받게 된다고 말하며, 니치렌 대성인의 핵심 사상인 ‘방법가책(謗法呵責)’을 호소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죄업’은 외부적 신(神)과 같은 존재가 부과하는 그러한 처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현상의 근간을 이루는 엄격한 법칙, 바로 불법의 인과이법 차원에서 볼 때 인간 생명의 궁극적 가치와 완전성을 가르치는 ‘법’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는 일은 자타 모두가 갖고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미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게 폭력을 자행한 일본이 이제는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폭력적 갈등에 돌진하는 당시 상황은 완전히 잘못된 세계관의 결과라고 말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뜻을 굽히지 않고 주장을 이어갔고, 사상경찰과의 대치는 불가피해졌다.
- 1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10권 (일본어판), 제삼문명사 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