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니치렌 불법에 입신했을 당시, 마키구치 선생님의 나이는 이미 57세였다.
지리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깊은 신념이 있었다. 그렇지만 종교의
중요성이나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또한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1899년 수필
"산과 인생"에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압도적 힘과 위대함의
예로 산을 논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감정이 바로 인간에게 종교적 마음을 불러일으킨다고
이야기한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평생동안 종교는 초자연적 영역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심리적, 사회적 현실에 기반하여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관철했다.
마키구치는 1935년에 남긴 보기 드문 자전적 기록에서 자신의 종교적 배경과 그동안 접한
여러 신앙에 관해 서술했다. 그리고 과학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겸손하면서도 세심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찰한다.
『창가교육학체계』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어 제1권 출간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법화경』을 연구하게 되었고, 종교에 대한 나의 태도는 크게 변모하였다. 나는 선종(禪宗)불교를 신봉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법화종의 한 종파를 수행하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신앙심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학업에 몰두하던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기독교) 믿음을 가질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도쿄로 이주한 뒤, 유교적 미덕만으로는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다시 참선을 하고, 기독교의 가르침을 듣고, 심호흡법을 배우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이후 약간의 믿음을 갖게 되었지만 그 어느 종교에도 깊이 빠져들지는 않았다 ......
그 어떤 가르침에서도 나의 과학관과 철학관을 뒤집거나, 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을 느낄 수 없었다. [1935]1
- 1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8권 (일본어판), 제삼문명사 405쪽